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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_[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2. 부천펄벅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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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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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6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2. 부천펄벅기념관
“힘은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고 용기는 가슴속의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193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펄벅 여사의 말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대지’라는 장편소설을 쓴 세계적인 작가로만 알고 있는 펄벅 여사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 골목길에서 ‘펄벅문화마을, 부천시 심곡본동’, ‘봉사와 박애정신을 실천한 펄벅 여사’란 글씨가 새겨진 화분을 만난다. 성주산 자락 공원 속에 자리 잡은 부천펄벅기념관(관장 박종민)에도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활짝 웃고 있는 펄벅 여사의 사진 주변에 ‘펄벅 여사님 존경합니다’, ‘어린이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펄벅 여사님 고마워요. 사랑해요’. 방문자들이 남긴 수백개의 글에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다. 사진 아래 ‘2024 펄벅인문학 아카데미 자료집’, ‘펄벅 할머니 색칠하기’, ‘펄벅의 세계’라는 책이 놓여 있다. 펄벅과 부천은 과연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부천펄벅기념관 박민주 학예사의 안내를 받아 기념관을 둘러본다.
■ 펄벅, 부천 소사에 희망을 심다
1층은 펄벅 여사의 저서와 사진,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고 2층은 책을 읽고 체험을 할 수 있는 학습공간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왼편 벽 대형 모니터에 펄벅 여사에 관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박민주 학예사가 펄벅과 부천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아시아 혼혈 아동을 도울 방법을 찾던 펄벅은 이들에게 안정된 주거, 건강,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센터를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1965년 펄벅재단 한국지부를 설립하고 1967년 이곳에 소사희망원을 개원했지요. 훗날 펄벅은 수백명의 혼혈 아동들이 자리한 소사희망원 개원식을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소사희망원은 적성분석부, 개인지도부, 예능원, 재활부 4개로 나누고 일반 고아들의 예능교육도 실행할 정도로 앞서나갔다. 150여명의 원생들이 생활하고 있었던 기숙사에는 휴게실과 오락실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혼혈 아동들의 어머니를 위해 양재나 비서학 같은 기능교육이 진행됐다. 학업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아주 뛰어난 학생들은 특별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의 기회도 줬다. “당시 펄벅 여사는 소사희망원에 머물면서 그들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희망원 아이들이 먹었던 밥은 당시 군대 장성이 먹었던 것보다 더 좋았다고 합니다.”
소사희망원 축소 모형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모형을 감싸고 있는 동판에 부조로 펄벅과 아이들의 모습을 새겼다. 펄벅 여사와 손을 잡고 서 있는 남자아이는 곱슬머리 흑인이고 옆의 여자아이는 콧날이 우뚝한 백인이며 또 한 아이는 목발을 짚고 서 있다. 소사희망원에 살던 아이들은 전쟁통에 부모를 잃거나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 진주처럼 빛나는 펄벅의 삶
우리말 이름이 ‘최진주’인 펄벅은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다. 3개월 만에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 진강에서 자랐다. 1914년 랜돌프메이컨여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 심리학 강사로 일하다가 어머니의 병 간호를 위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다. 농업학 교수 존 로싱 벅과 결혼하면서 ‘벅’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1930년 동양과 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첫 소설 ‘동풍, 서풍’을 발표하며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왕룽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장편 ‘대지’(1931년)을 출판해 작가로서 명성을 날렸고 이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50년 딸 캐럴의 이야기를 담은 ‘자라지 않는 아이’란 소설을 발표한다. 펄벅은 인종 문제에 맞서 인권 개선을 위한 사회참여 활동을 전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세계 평화 및 아동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자원봉사 활동에 전념한다.
전시실의 많은 전시물은 책이다. 대부분 영문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된 펄벅의 저서도 상당히 많다. 앉은뱅이책상은 ‘살아있는 갈대’를 집필할 때 사용했던 책상이니 펄벅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것이겠다. 책상 위에는 영문판 소설책 여러 권이 놓여 있고 펄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1967년 당시 소사희망원에서 사용했던 청색 타자기와 P.S.B 이름자가 또렷한 펄벅의 가방도 있다. 기증한 줄리 헤닝의 한국명이 ‘구순이’다. 분홍색 투피스 정장을 통해 펄벅이 멋쟁이였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1968년 서울시가 선물한 ‘명예시민증’에 펄벅 이름을 ‘최진주’라 써 놓았다. 1967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펄벅 여사에게 수여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도 있다. 유리병에 펄벅 여사가 잠든 고향 묘지의 흙이 담겨 있다.
■ 유일한과 펄벅의 우정이 깃든 곳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1894~1971·독립장)가 1967년 4월11일 펄벅에게 보낸 편지와 펄벅이 4월17일 답장한 편지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유일한은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설립한 한인 소년병학교에 입학해 애국 사상을 배웠다. 1940년대 초, 펄벅이 동서협회를 설립할 무렵 유일한 박사의 한국 독립운동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오랫동안 교류하며 우정을 쌓았다. 특히 펄벅은 유 박사의 도움으로 유한양행 소사 공장 터를 매입해 1967년 11월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하는데 소사희망원 개원식 날 함께 자리한다. 펄벅이 한국의 구한말부터 광복까지를 배경으로 집필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1963년) 속 주인공 이름을 ‘일한’으로 지은 것만 봐도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영미 언론에선 이 작품을 ‘대지’ 이후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펄벅은 이 소설 서문에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했다. 펄벅이 한국을 배경으로 집필한 책은 ‘한국에서 온 두 처녀’와 ‘새해’까지 세 권 모두 전시해 놓았다.
펄벅은 글과 강연으로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세계에 꾸준히 알린다. 1937년 8월 중국 신문에 ‘한국은 응당 자치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실어 독립을 지지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펄벅은 1941년 동서협회를 조직해 1942년 ‘한국을 알자’는 강연을 시작으로 ‘한국인의 밤’과 ‘이 위기 속의 한국’ 같은 행사를 통해 꾸준히 한국을 소개했다. 펄벅은 1944년 2월 ‘우리의 잊힌 우방 한국의 2,500만’을 주제로 다음과 같은 강연을 한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이 패망할 때 즉시 자유를 얻길 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 부천, 펄벅을 기억하고 기념하다
부천펄벅기념관은 2006년 9월 개관한 이후 펄벅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펄벅 인문학 아카데미’를 비롯해 올해로 16회를 맞은 ‘펄벅 탄생 기념 그림그리기 대회’를 열고 있다. 아이들이 기념관에서 선생님에게 펄벅 여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관람한 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제16회 펄벅 탄생 기념 그림그리기 대회 2024 작품집’을 펼친다. 올해의 대상은 탕정초등학교 이하율 어린이가 그린 ‘다르지만 같은 우리’라는 작품이다.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뜻을 담아 한 사람의 얼굴을 백색, 흑색, 황색, 갈색 네 가지 색깔로 그린 것이 재미있다. 같은 날 ‘2024 펄벅학술대회’도 열렸다. 기조강연 제목이 ‘펄벅과 한국 문화자유주의’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을 예견한 것일까. ‘펄벅과 한국문학의 발견’이란 토론에 눈길이 간다.
기념관을 나와 공원에 있는 펄벅 동상을 찾았다. 문득 펄벅이 진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개 속살에 난 상처에 자라는 것이 진주 아닌가. 장애인 딸을 가진 어머니 펄벅은 그 사랑을 넓혀 대한민국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세워 상처 입은 아이들과 어머니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 진주를 기르게 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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